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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현대

서평: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by 책을 담는 모리아 2021. 8. 28.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 천영미 / 고즈넉이엔티]

 

"나무들의 세상에선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내가 굽었다고 나를 차별하는 건 사람들밖에 없다."

-본문 중-

 

소재가 독특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모티브로 만든 소설이다. 특히, 소나무 설명은 나무에 대한 의미까지 알려준다. 그 옛날 소나무는 천자의 나무로 사대부를 사칭하는 존재였다. 그러니 백성들은 소나무의 솔잎조차 가져갈 수 없었다. 그저 나무일뿐이고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게 언제부터 이렇게 특정인을 칭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호프 자런의 랩 걸(2017년 작품)을 읽게 되면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 나무에 대한 설명이 아닌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한국 대표하는 소나무와 솔방울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하는 아주 작은 호기심이었다. 종종 산책을  나가니 주위에 있는 나무와 식물이 나에겐 늘 새롭다. 이름은 모르지만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을 나무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제목에 끌렸지만 표지에 더 매료가 되었다. 등이 굽은 한 선비와 굽어 자란 소나무는 마치 서로의 삶을 알듯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코 평탄치 않을 거 같은 두 존재의 인생 이야기.

 

소설의 시작은 한 나무가 벌목이 되는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한 독백에서 시작된다. 겨우 땅에 씨앗을 내렸고 지금부터 어떻게 서든 살아가려는 나무의 이야기. 동시에, 한 양반 가문에서 아이가 탄생하지만 기쁨도 잠시 등이 굽은 사내아이였다. 기뻐해야 하지만 침통한 그날 아이의 할아버지는 소중한 인연임을 강조하며 손주를 안았다. 아이의 친모를 정상아를 낳지 못한 괴로움으로 결국 시름 앓다 죽었고 아이는 부모 없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총명하면 뭐하나 꼽추라고 놀리니 배움조차 가지지 못한 손자에게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조언해준다. 그 아이의 이름은 허은수. 또한, 씨앗을 내리기 성공한 나무는 반듯하게 자라지 못하고 굽어 자라게 되어 베지 못하고 은수가 사는 집으로 옮겨져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는 집안의 정원과 함께 성장했다. 자신의 모습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러나, 부인 아영을 만나게 되면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급제까지 해 드디어 조선의 왕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세종이 살았던 시대를 하고 있어 자신보다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의 모습이 보였다. 대신들과 달리 초가집에서 거처하면서 가난한 자의 삶을 알려고 했던 왕. 그 앞에 자신의 뜻과 맞는 인물이 나타났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심지어 의관부에서 일하는 전순의가 합류하게 되면서 왕과 은수, 전의관은 앞으로 다가올 기근에 새로운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물론, 굶주림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나라를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개혁은 쉽지 않다. 사대부들은 왕의 총애를 받는 은수를 질투하기 시작하며, 상림원을 담당하는 은수를 어떻게 서든 처리해야 했다. 이 또한 왕은 모르지 않았기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탐라(제주도)까지 다녀오면서 백성들의 삶을 알려고 했었고 기나긴 가뭄에 소나무로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까지 나왔지만 사대부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왜냐? 소나무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것이니 절대 누구도 벨 수 없다는 꽉 막힌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바로 굽어 자라는 소나무다. 반듯한 나무라면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나 굽어 자란 소나무라면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 아들인 안평대군에게 소나무가 왜 백성의 나무라고 하는지 설명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사실은 너무 평범하다. 낚시하며, 계곡에 쉴 때며, 시를 쓰거나 벗들과 교유할 때 또한 탄생과 죽음을 알리는 게 소나무라고 말이다. 삶 속에서 스며든 나무의 존재가 바로 백성의 나무라고. 그러니 양반을 상징하는 나무가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바뀌니 사대부들은 절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힘겹게 씨앗을 내려 양분을 흡수하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소나무와 장원급제했지만 등이 굽었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으며 왕의 일을 돕는 은수의 삶을 닮았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때론 절망이 있기도 했지만 이것을 기회로 삼는 것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이다. 나무만큼 크고 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을 두고 나무는 은수에게 속삭인다 "튼튼히 만들어서 자란 게 아니기 때문에 깊이 뿌리 받고 자라는 나무처럼 강인해질 수 없는 것이니 그대는 나무처럼 깊이 뿌리내려 더 오랜 세월을 견뎌내길 간절하게 바라네"라고. 인간의 덧없는 삶을 보여준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 얼마나 이것을 깨닫고 있을까? 사대부들은 결국 은수를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이건 은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한 몇 가지 사건을 실제로 역사에 있었던 일이었으며 어의 전순의 역시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소개는 안 했지만 온실재배를 시도했었는데 이 역시 만들었던 것이며, 을해년 상사(태조의 비 신덕왕후가 흥하자 명나라에 있던 사실들이 상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처형시킨 일), 탐라 백성들이 귤나무를 죽인 사건 , 어의 전순의가 지은 요리책이자 농업 책인 '산가요록' 등 이렇게 역사의 한 부분을 알게 해 주었는데 이를 보면 지금과 다른 과거가 결코 뒤처진 시대가 아님을 다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