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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장르

서평: 왕세자의 살인법

by 책을 담는 모리아 2021. 10. 23.

도 서 : 왕세자의 살인법

 

저 자: 서아람

 

출판사: 스윙테일

 

'사실 범은 서린만 깔본 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했으니까.

감정 따위 있어봤자 방해만 될 뿐이라고, 그런 하찮은 것에 휘말리는 인간들이 무슨 위업을

달성하겠느냐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감정에 사무친 인간들이 

서로 손잡고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그를 궁지로 몰아붙였다.'

-본문 중-

 

전작인 [암흑검사]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만지는 물건에 사념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양반가 자녀인 서린과 사이코패스로 자란 세자 범과의 두뇌 싸움 그 자체는 긴장이 되었다.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설마 세자가 살인을 할까? 아니하더라도 악한 사람만을 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책은 총 두 권으로 1권은 어릴 적 서린이 우연히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알게 되면서 서린의 아버지 윤대감은 걱정이 시달렸다. 그러다 마침 서린과 같은 능력을 지닌 지알(스님)을 만나게 되고 10년 동안 능력이 나타나는 왼손에 자신이 준 헝겊을 주면서 꼭 10년을 당부했으나 윤대감이 역모죄로 귀향을 가게 되고 서린과 어린 여동생 아린은 그나마 궁녀로 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궁에서는 한때는 왕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외면을 당한 박씨와 그녀의 아들 범이 모든 이들로부터 무시당한 채 숨죽여 살아가고 있었다. 왕을 향한 집착으로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리는 박씨는 결국 사지가 찢어지는 형벌을 받아 죽었고 어린 범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위험스럽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어린 이복동생 헌은 세자로 자신은 대군으로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고 우연히 범은 자신이 한 행동으로 헌이 식물인간이 되면서 이젠 자신이 세자로 동생은 대군으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범은 서린의 동생 아린을 물에 빠뜨려 죽게 했고 서린은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찾기 위해 10년 가까이 묶었던 헝겊을 풀었다.

 

서린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서린의 집에서 일하던 무휘와 아버지뿐이었다. 무휘 역시 서린이 궁에 들어오게 되면서 가마꾼으로 들어왔고 두 사람은 힘들 때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사물을 만지면서 범인을 좁혀가는 동시에 서린의 존재를 알게 된 범 역시 능숙하게 서린을 이용한다 아닌 한 발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년 가까이 식물인간(?) 상태였던 헌이 깨어나게 되면서 다시 한번 범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동안 인성이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또한 이 사실을 아는 건 오랫동안 옆에 있던 조내관뿐이다. 서린과 범의 대결이라면 서린은 궁녀로 힘이 없지만 그녀에겐 조력자들이 있었다. 무휘는 물론이고 가마꾼인 도야, 같은 궁녀인 채옥이(초반엔 서린을 싫어했다), 빙부에서 만난 장별좌 그리고 의녀인 단금, 가장 중요한 지알 스님이다. 

1부에서 서린이 범인을 좁혀가던 중 오히려 범에게 역으로 당해 관노로 끌려가던 중 도망치게 되면서 빙부로 가게 되었다면 2부에서는 다시 궁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범과 대결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엔 헌이 아내를 맞이하게 된 서씨가 총명해 서린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정말 서린을 제외하고 모두가 역모죄로 잡혀 들어갔을 때 이야기를 어떻게 흘러갈지 긴장이 되었다. 이어, 서린이 사물의 사념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예상치 못한 내용들로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저 흥미롭게만 볼 수가 없었다. 살인을 저지른 세자인 범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문득 저자는 세자에게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어릴 적 아버지 왕의 사랑마저 외면당해야 했고, 친모의 죽음을 직접 보게 되었으며 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게 되었다. 아무리 순수하게 자신을 형이라 따라주던 동생이라도 자신과 너무 다르게 평탄하게 살고 있는 헌에게 무슨 애정이 생길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범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타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그에게 자신을 아기 때부터 키워진 조내관이 있었지만 그의 존재가 그렇게 소중한지 범은 느낄 수가 없었다. 범이 조내관을 죽이는 순간까지도... 반면, 조내관은 죽는 순간까지 범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범은 희생양이 되었고 이를 바로 잡지 못했기에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려 자신을 아끼는 사람마저 죽이게 만들었다. 또, 궁 밖에서 서린이 만난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과 삶을 보여주면서 안타까운 감정이 몰려들었다. 그중 빙부를 관리하고 있는 장별좌는 친모가 천민으로 양반에게 겁탈 당해 태어난 존재로 총명하나 친모의 신분으로 출세조차 할 수 없었다. 평생 친모와 의지하며 살았지만 아들이 더 잘 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사연... 아 정말 이 장면에선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소설은 주요 인물들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지 않았다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으며, 각 권의 페이지는 400페이지가 넘지만 순식간에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높았다. 다음에는 어떤 소설로 만나게 될까? 문득 무조건 믿고 보는 작가가 되어버렸다. 

 

'가해자와 희생자의 핏물로 상처를 씻어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모두가 그렇게 믿는 듯했다. 하지만 서린은 아니었다. 그녀는 죽어버린 이 황량한 땅에 서서 멍하니 궁금해할 뿐이었다. 정말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면 자신의 동생과 채옥이 연모하던 남자와, 조선 역사상 가장 충직했던 내관과, 가여운 누렁이의 주인은 왜 돌아오지 않는지. 서린의 가슴을 가득 메우는 건 허망함이었다.'

-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