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은 후 한참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쉽게 공감이 오지는 못했지만 현재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지만, 모두들 우리 자녀가 그렇지 않다면 과연 누가 그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인가. 자식에게 애정을 주고 사랑을 준다고 하지만 그 내면까지는 본인 외에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사회에 나가 고립되지 않고 타인과 잘 어울리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 것이 자녀교육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이컵을 위하여>는 읽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애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교육열 어느 도시 보다더 좋고, 사건과 사고도 적은 도시에서 한 소년이 처참하게 죽은채로 발견 되고, 이 사건 뒤에는 '제이컵'이라는 소년이 연결 되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 부족함이 없어 사랑을 주는 부모가 곁에 있었음에도 모든 정황들이 '제이컵'에 불리하게 작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믿어준 유일한 가족 '아버지' 앤디는 검사로 이 사건을 맡게 되었으나 자신의 아들이 거론이 되면서 결국 그만두고 이제는 아들을 보호하기 나서게 된다.
맹목적인 사랑. 모르겠다. 자신의 피속에 흐르고 있는 폭력성을 견제하고 있던 앤디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들에게도 이 피가 흐르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들이기에 부모이기에 편에 서 있는 그 모습에 대해 무엇이라 설명을 해야할까. 아내인 '로리'는 어릴 적 '제이컵'이 아이들을 다치게 했던 사건들을 떠올리며 애기를 하지만 '앤디'는 철저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럴수도 있다'라고 하기엔 그의 말에는 철저하게 '폭력성'을 숨기려는 의도가 보여지는데 이 또한 부정(父情)이라고 봐야할지...모르겠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믿었던 아들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알아가면서 그들이 느낀 감정들은 현 부모들의 마음이고, 그 부모들의 부모들의 마음이다. 한 여인의 몸에서 생명이 잉태가 되고 탄생 되었지만 하나의 인격체 이다보니 그 스스로가 자신을 알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부모마저도 말이다. 이 책은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을 담고 있어, 먼 훗날 내가 자식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하게 될지 의구심이 끊임없이 들었다.
일반 법정 스릴소설로 치부하기엔 독자들에게 생각할 문제 덩어리가 큰데, 마지막 '제이컵'의 판결이 나고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일어나는 또 하나의 사건. 사건이라고 하기엔 어색하지만 나에게 마지막 로리의 선택에 놀랐다. 아니, 충격이라고 해야할까. 쉽게 공감한다거나 이해한다는 표현을 못하겠다. 부모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덮고나서 지금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잠깐동안 멍하니 눈만 깜빡이게 되었다. 그리고, 책 뒷면에 있는 질문을 다시한번 보게 되었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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