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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여행(기타)

[서평] 남자의 자리

by 책을 담는 모리아 2021. 2. 6.

남자의자리/1984books/아니에르노

 

[르노도상 수상작]인 아르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를 읽었다. 총 다섯편의 에세이 중 첫번째로 만난 도서다. 이 책을 읽기 전 다른 도서에서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를 읽어 알게 되었던 것이 전부다. 그러니 에세이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증폭 될 수 밖에 없었다. [남자의 자리]라는 제목을 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연인' 또는 전체 남자구성원을 생각했었다. 원서제목은 '자리'를 뜻하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A Man's Place'로 하면서 '남자의 자리'로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자리'라는 단어 뿐이다. 에세이 내용이 아버지 중심이다보니 이렇게 번역이 되었는데 Place는 자리 또는 어느 공간을 의미하는 거라 책을 읽으면서 시야를 더 폭 넓게 가져야 할 거 같다. 

 

책은 아니 에르노가 교사 자격 실기시험을 치르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합격 후 두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조문객들이 방문하고 다들 아버지를 향한 말들을 할 때 아버지의 형이 "네 아버지가 너를 자전거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줬던 것을 기억하니?" 라고 말을 했다. 이것이 촉매재였을까? 아버지의 죽음 후 엄마의 삶 역시 고용해진거 같다. 살아생전 가게를 운영했던 부모님 이제는 엄마 혼자 운영을 하게 되었고 가게 문을 열기 전 늘 엄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기차를 타고 돌아가던 중 저자는 생각했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를 대해 쓸고 싶었다'라고 말이다. 

 

이렇게 시작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누구나 그때 당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삶을 보여준다.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는 당시 한 농장에서 짐수레꾼으로 일을 했는데 여덟 살 이후로 다른 일을 해 본적이 없었다. 품삯은 아내를 주었지만 때론 폭력으로 가족을 대했다. 물론,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는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군대를 가게 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고 제대 후엔 할아버지를 따라 농장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간 어느 공장에서 건실하게 일을 했다. 여기서 저자는 아버지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으나 가족을 떠나야 했고,또 약아빠진 사람들을 상대할 그럴 베짱이 부족했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나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어머니는 당시 활기차고 당찬 여공이었다. 짧은 원피스에 매니큐어 그리고 눈화장까지 했었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자신을 만지게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사랑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도 나름 두 사람만의 표현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고 가게를 얻게 되면서 드디어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노동자들의 외상이 늘어났고 심지어 전쟁이 터지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징집 대상이 아니었으나 피난을 떠나야 했다. 피난처에서 돌아온 후 어머니는 그렇게 아니 에르노를 출산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자리에서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식료품을 구하러 다녔고 음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었다.

 

"훗날 그는 그 시절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진짜 살아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전에 살았던 도시로 이사를 한 가족들은 그곳에서 다시 가게를 얻었다. 전에는 없던 것을 소유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되지만 아버지가 찍은 어떤 사진에는 웃고 있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필요한 것이 있었고 집은 따뜻했으며 점점 소유하는 것이 많아졌지만 이 속에서 긴장과 실수로 옷이 찢어져도 아버지는 호통을 치를 뿐이었다. 심지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분수를 알아야 해'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음, 아버지의 세대는 모든 것이 결핍이었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심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존감은 낮을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자식이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언제나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간 아버지였다. 

 

점점 커가는 딸과 아버지. 두 사람은 식사 중에서 싸우곤 했다. 그저 대화를 할 줄 모르기에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아니 에르노의 회상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 없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에 그저 울컥해졌다. 더 이상 딸에겐 자신의 존재가 크지 않음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향을 떠나 공부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늘 그자리에 있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 아버지를 느낄 수는 없었을까. 또한, 아버지의 존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한다. 소설은 당연 새로운 창조물이며 여기에 미화를 할 수밖에 없어 아버지의 모습이 전혀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자리' 이 에세이에서 보여준 의미한 한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지켜나가는지를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자리' 에세이엔 아버지 자신이 있을 그 자리를 늘 지키고 있었던 모습을 그저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