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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고전

서평: 알기 쉽게 풀어 쓴 신곡

by 책을 담는 모리아 2021. 6. 6.

< 알기 쉽게 풀어 쓴 신곡 / 단테 알리기에리 / 아름다운 날 >

 

단테가 숲을 걷다 길을 잃었고 숲 속에서는 무서운 짐승이 단테를 주시하고 있다. 왜 자신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 순간 한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난다. 자신은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베르길리우스라고 소개한다. 베르길리우스...로마 시대에 살았던 시인으로 단테에겐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학의 영원한 스승으로 그를 찬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존재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짐승이 단테를 위협하려는 순간에 그를 구했다. 그렇다면 왜 단테 앞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단테의 오래 전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천국으로 단테를 데려가야 하는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이 존재했던 그 시대에는 신을 믿지 않았기에 천국에 있지 못하고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중간 세계인 림보에 살고 있다. 천국까지는 아니어도 지옥을 지나야 하는 단테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함께 지옥을 지나가기 시작한다. 지옥을 지나가면서 단테를 자신이 지상에서 알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동시에 생전 죄를 지었기에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형벌을 받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그 광경이 너무 끔찍해 눈을 돌리기도 하는데 여전히 형벌을 받고 있어도 죄를 뉘우치는 자가 거의 없다. 여기서 살아생전 선하고 하느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이들도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교만과 탐욕, 동성애자 때론 죽기 전 회개하여 지옥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는 곳도 지나치게 된다. 단테가 스승과 같이 지나는 지옥의 상상도는 끔찍하다. 정말 이렇게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또한, 육체는 지상에 있는데 영혼이 이미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도 보게 된다. 지옥의 모습은 혐오스러우면서 죽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고통이 끔찍스럽기만 하다. 단테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 지옥을 지날 때마다 형벌을 받는 이들은 단테를 보고 놀란다. 고향 사람을 만나기도 했던 단테는 훗날 자신의 불안한 미래 예언을 듣기도 한다. 워낙 시대가 그러했으니 어느 당파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단테의 운명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끔찍한 광경을 겨우 지나쳐 연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연옥에서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천국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회개의 눈물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언제 이 기도가 끝나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천국의 하늘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까? 고통 받는 지옥보다야 연옥이 나을 수 있다지만 역시 천국을 향한 갈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연옥을 지나 천국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 단테 아니 이제 막 천국이 시작되는 곳에 발을 내딛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와는 이별 할 시간이었다. 

 

천국에서 만난 베아트리체...지옥에서 고통을 보았다면 천국에선 신을 향한 찬양과 찬미를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교회에서 신을 섬기는 일과 하느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베아트리체가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말이다 천국 보다 지옥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신의 섭리를 설명하는 천국은 철학과 역사 등 여러 측면으로 소개하는 반면 지옥은 인간 그 자체로 인해 내린 형벌을 받고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거 같다. 결국 인간은 살면서 자신이 얼마나 선행을 했는지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본능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이 조차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느 것이 옳다고는 할 순 없다. 그저 신곡을 읽으면서 사는 동안 인간이 죄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뿐이었다(신을 믿지 않는 것도 여기에 속하니 말이다). 

 

<위 도서는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무료로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